어차피 책 읽다 밤샐거 엄마를 깨우고 자라기에 흔쾌히 OK 하고선 가즈키씨의 <Speed>를 읽다 나도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살 더 먹은 나이는 속일수가 없나보다. 그러고보니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대학교 3학년쯤에도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래도 하루 꼴딱 새우고도 학교는 가야했기에 어찌됐든 '깨어있는' 낮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새벽까지 책보다 모두가 아침을 시작할때 잠을 자는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 모드이기 때문에 그때보다 밤새는 능력치는 더 떨어진듯 하다. 


어찌되었건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시장에 가려고 비척비척 집을 나왔는데,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고 있더라. 두살만 덜먹었어도 와와~ 눈이다~ 하며 기뻐했을까.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내가 한 일이라곤 지퍼가 고장나 잠기지 않는 잠바의 단추를 여미는 것 뿐이었다. 아, 물론 오빠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건 단지 오늘 면접 잘 보고 오라는 일종의 안부전화였을 뿐, 눈온다~보고있어? 히히, 보고싶다. 같은 애교섞인 통화는 아니었다.;


야채 몇가지와 반찬 몇가지, 과일을 살까말까 망설이는데 부는 바람은 점점 거세져서 여기가 남극인지 수원인지. 요 며칠 따뜻했다고 방심해서 그런걸까,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추워서 과일은 포기하고 덜덜 떨며 집으로 들어오니 세상 낙원이 따로 없더라. 42분에, 조금 거리가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도서관에나 다녀오려 했건만, 매서운 바람을 체감해버린 몸은 도통 움직일 생각도 않고 그만 퍼져버려서 반 웹서핑, 반 까무룩 잠드는 일로 3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지. 결국 도서관은 다녀왔지만. 내리던, 내렸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온도만 와장창 내려가있었다.


아직은 차도 없는 뚜벅이기에, 소복 쌓인 눈을 보면 괜시리 아직 아무도 안밟은 곳을 골라 밟으며 꼬드득 하는 눈소리를 듣는걸 즐기지만, 곧 직장을 구하고 면허를 따고 돈을 모아 차를 사면 내리는 눈을보며 '아 오늘 도로 우왕ㅋ샹ㅋ이겠군' 하는 생각을 하게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눈을 즐기는 소녀감성의 처자이고 싶으나,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몸과 매서운 바람은 내 감성마저 휩쓸어 가는구나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