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에 걸리면 말씀해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요즘같이 절망스러운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그때 힘들었던건 별 거 아니었잖아...라고 할만큼.


만화는 그냥, 내가 보고 힘내려고. 나한테 해주는 

얘기인것 같아서. 저작권에 걸리려나....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절망하지 말 것.그래 힘내자.




 

오유에서 퍼옴


누가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걸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타고 한시간만 가면 서울인데. 그놈의 알바 하느라 바빠서..

그것도 내일이면 끝나고, 토요일은 서울갈테니

나도 꼭 한손에 촛불들고 촛불시위 참가하련다.


오빠는 혼자라도 다녀왔는데..유모차 밀고 아가들이 선봉에 서서도 반대하는데.. 

예비군 오빠아저씨들 시민 보호하겠다고 막아주는데..

나는 참가도 못하고 마음이 좀 무거웠었다.

그래서 온라인 촛불시위 보자마자 냉큼 참가했지만..


나도 뜨거운 촛불 들고 반대하고 있노라고 내 의사 표명해야겠다.

광주는 화끈하게 횃불시위 하던데 맘같아선 횃불이 아니라 

청와대에 불을 지르고싶다만. 먹먹하다..이런거 써도 잡혀갈려나?


방금 웹서핑하다가 또 우스운 기사를 봤다.

쇠고기 장관고시 틈타서 수돗물 사유화 발표했단다.


이민을 가고싶다. 바로잡지 못하면, 그냥 픽픽 죽어 나자빠져도

그게 당연해질것 같은 분위기다..


무섭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80년인가 08년인가




'ㅅ' 탐구생활/리티의 2008. 5. 1. 00:00

 

오유는 웃대에서 퍼왔다함.


나는 스타를 모른다. 와우하다 오빠한테 손 느리다고 왕창 혼난 뒤로 

스타는 꿈도 안꿨다. 사실 한번 해보기는 했는데 어리버리 버벅버벅 

유닛 4마리 뽑고 오오 했더니 컴퓨터가 한부대를 몰고 내려오고 있더라.


후우 -ㅅ-)y~


근데 저 그림만큼만 귀여웠으면 나도 스타 했을지도 몰라'ㅅ'

잡아랑~이라니 ㅋㅋㅋㅋㅋ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어진다.. 서!!! 서란말이야!!!




 

written by Liti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언제나 채팅을 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산을 쓰자니 이상한 날씨에 짜증을 내던 중에 나는 그에게 이별통보를 들었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헤어지자고 말하는 그를 나는 붙잡지 않았다. 옷에 묻은 이슬방울같은 비를 털어내면서 무덤덤하게 그래, 하고 말했을 뿐이다. 오히려 이별을 말한 그가 화를 냈다. 너 나 사랑하긴 했니?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도를 알 수 없는 그에게 나는 그럼 너는? 하고 되물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돌아서 가 버렸다. 어차피 가벼운 관계였을 뿐이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열을 내는지 알 수 없었다. 괜히 투정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내 기분은 날씨보다 더 눅눅해졌다. 나는 습기를 잔뜩 먹은 김처럼 흐물흐물 집으로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내게 엄마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면서 무덤덤하게 또 헤어졌냐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한두 번 차였어야지. 이건 차인 게 아니라 내가 찬 거나 다름없는 거야. 괜히 짜증이 나서 삐딱하게 말하며 방문을 쾅 닫았다. 책상, 침대, 화장대에 죄다 그가 준 것들이 널려있었다. 나는 의식을 치르듯이 책상 밑에 두었던 박스를 꺼냈다.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었다. 그가 준 선물들도,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잡동사니니까. 나는 물건을 집을 때마다 필요 없어, 라고 중얼거리며 박스에 '선물'이었던 것들을 죄다 쓸어 담았다. 잡동사니로 치부해버리기엔 아까운 단 한 가지는 처음으로 선물 받은 그린 티 향수였다. 시원한 향이 꼭 마음에 들어서 즐겨 뿌리곤 했는데, 이제 잡동사니로 넣으려니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칙, 미세한 향수 방울들이 방안으로 확 퍼지며 향기를 뿜어냈다. 그에게 처음 선물을 받았던 그 때의 상쾌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새 향수가 썩을 리도 없을 텐데, 습기 가득한 여름날 고양이가 파헤쳐놓은 음식물 쓰레기 같은, 구역질나는 냄새가 났다. 어느 새 문을 열고 나를 보던 엄마는 또 그 지랄이냐, 하고 커피 한잔을 두고 갔다. 아무 미련 없이 향수를 박스에 담아버리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내 방으로 들어와 향수 냄새를 밀어내자 커피 냄새가 진하게 났다. 평소엔 늘 나에게 커피를 시키는 엄마는 꼭 내가 차거나 차이고 들어오면 커피를 타 주었다. 블랙커피가 좋다고 몇 번을 강조했는데도, 엄마는 자꾸 프리마가 잔뜩 들어간 다방커피를 타준다. '다방 레지'였으니까, 그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고 생각했다. 아무 간섭 않는 외할머니 덕에 엄마는 놀고 싶은 만큼 실컷 놀 수 있었고, 그 것은 나의 아빠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엄마는 꽤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닮아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남들이 보면 자유라기보다는 손을 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넥타이가 있는 중학교 교복을 입을 무렵에 내 책상에 놓인 담배를 보아도 엄마는 한두 개피를 빼내 피웠을 뿐이고 아직도 생각하면 욕이 나오는 변태 대머리 담임이 있던 고등학교 무렵 화장대에 놓여있던 지하철 화장실의 500원짜리 콘돔을 보고도 엄마는 지하철 싸구려는 별로야. 베네통이 좋아, 라고 했을 뿐이다. 이런 철없는 엄마 덕에 나는 시답잖은 놈들과 많이 만나고 또 많이 헤어질 수 있었다. 그 '죽일 놈'들의 머릿속엔 밤낮없이 야한 생각만 가득하고 툭하면 사랑을 핑계 삼아 내 몸을 비집고 들어올 때는 언제고, 헤어질 핑계가 없으면 내가 헤프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괜히 우리 엄마까지 끌어들여 욕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그런 놈들의 싸대기를 때리고 씩씩거리며 헤어지고 들어왔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다방커피를 타 주었다.


코딱지만 한 회사에서 나는 커피, 복사,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한마디로 부려먹기 좋은 여직원이라는 소리다. 복잡한 일 보다는 차라리 커피나 타라고 시키는 게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비정규직이라 언제 잘릴지 모르지만, 별 걱정하진 않는다. 일도 안하는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지만 악착같이 일해 모은 돈을 주고 가신 외할머니 덕에 우리 집은 꽤 풍족한 편이었고, 꼭 일해야 하는데 자리가 안구해지면 엄마처럼 다방 레지라도 하면 되니까. 과장은 나에게 너무 인생 쉽게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 돼, 라고 나름 근엄한 투로 말하곤 했다. 남자는 왜 두어 번 자고나면 자기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될뿐더러 우습다. 회사에서 나오면 비굴하게 저녁을 사고 모텔에 가기까지 내 비위만 맞추려고 하는 배나온 아저씨면서 말이다. 별 다를 것 없는 섹스를 끝내고 나는 멘톨 담배를 피우며 그건 과장님 생각이시구요, 하고 과장이 벗어놓은 콘돔을 보며 말했다. 과장은 얼른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보단 마누라가 무서워서겠지만. 과장의 마누라는 회사에서도 꽤나 유명했다. 어지간히 등쌀이 센 가보다. 내 비위를 맞추려고 굽실거리는 것도 사실은 마누라에게 하던 습관이 굳어져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하며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 잡동사니와 함께 있던 다 먹은 피임약 껍데기를 보는 순간, 갑작스레 생리가 터질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껍데기를 냅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모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편의점에 들러 과장이 준 돈으로 초콜릿을 사서, 한 조각을 먹고 고이 접어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 밑바닥에는 한 달 전에 한 조각 먹고 넣어둔 초콜릿이 있었다. 냉동실에도 한 조각만 먹은 초콜릿이 여러 개 있었고, 화장대 서랍이나 책상 서랍에도 굴러다니는 초콜릿이 있었다. 그 초콜릿들은 다달이 꼬박꼬박 내가 생리를 했다는 증거품이었다. 생리를 시작하는 날이면 초콜릿이 유난히 먹고 싶었고, 이상하게도 한 조각만 먹으면 더 이상 손을 대기가 싫어져서 아무데나 처박아두던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가 초콜릿을 사올 때마다 집에 있는 거나 다 처먹으라고 화를 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뜯은 초콜릿은 손대기 싫었지만 버리기엔 아까웠다. 초콜릿뿐만 아니라 나는 뭐든 잘 버리지 못한다. 학창시절 쓰던 필통이나 지우개, 고장 난 샤프까지도 나는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필요 없다 싶은 물건은 가차 없이 내버렸다. 쌓이고 쌓여 결국 유통기한이 지난 초콜릿을 버리는 일도 엄마의 몫이었고, 가끔 내 방에 들어와 서랍 속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버리는 것도 엄마의 일이었다. 엄마는 화가 날 때면 누구의 것이든 가리지 않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다 내다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우습게도 버리지 못하고 이래저래 모아뒀던 물건들이 엄마의 손으로 버려지고 나면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후련함이랄까, 통쾌함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딱 하나 손을 대지 않는 곳이 있다면 곰이 그려진 노란 종이박스였다. 그것은 내가 헤어질 때마다 사귀었던 놈에게 받은 선물들을 죄다 쓸어 담는—최근 그 향수까지 깨끗하게 담아버린—기념비적인 박스였는데, 가장 치워버리고 싶은 물건이면서도 몇 년째 나는 그것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고, 다른 모든 것을 치워버리는 엄마는 나를 대신해 그 박스를 버려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회사 여직원들이 나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뚝 끊긴다거나, 내가 퇴근을 할 때면 유리문에 비치는 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도 이젠 익숙하다. 남직원들도 크게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음담패설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이 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누구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니까.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지, 날이 갈수록 곱지 않은 시선들이 짜증이 났다. 난 그냥 내 자리에서 커피를 타다 주고 복사를 해다 주는 것뿐인데, 자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 평가는 전염이 돼서 결국엔 나를 고립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엄마의 말대로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는 어렵다. 하루 종일 헛구역질에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웬일로 채팅이 아닌 짐을 꾸리고 있었다. 베를린으로 갈 생각이라며, 말도 통하지 않는 금발머리와 사랑에 빠진 철부지 이모네 집에서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엄마의 계획이 실행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었지만 엄마는 여행 가기 전의 설렘이 좋다며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엄마의 배다른 동생인 이모는 소위 잘 노는 날라리의 표본이었던 엄마와 다르게 공부 잘하고 착실한 사람이었다. 단지 심하게 엉뚱한 것, 사랑에 빠지면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모의 연애 이야기는 엄마의 영향으로 세상의 남자는 멋진 놈과 죽일 놈, 두 부류만 있다고 믿고 있던 어린 나에게 환상을 느끼게 해 주었었다. 엄마의 두 부류가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두 부류는 각각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한 놈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짐을 꾸렸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고 이모에게 베를린 날씨를 물으러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엄마가 남자에게 전화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날라리였다는 것도, 다방 레지였다는 것도, 어렸을 적부터 채팅을 꽤나 좋아했다는 것도, 내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도 모두 이모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토요일 오후에 하는 오락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것과 꽤 맛있는 다방커피만 탈 줄 안다는 것, 화가 나면 죄다 내다 버리는 습관과 요리를 굉장히 못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채팅 중독이 전부였다. 나는 엄마가 나의 아빠를 정말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죽일 놈'이라 말을 꺼내기 싫은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차곡차곡 싼 짐을 방 귀퉁이에 모아두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는 컴퓨터는 윙윙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새로 주문해 본 딸기향 마테차를 타서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한 모금 마시더니 손사래를 치며 컵을 다시 내게 내밀었다. 쓰기만 하고 아무 맛도 없잖아. 이런 건 너나 먹고 난 커피 타다줘. 그 짧은 사이에도 수많은 말들이 글로 변해서 재빠르게 화면에 떠오르고 있었다. 엄마는 또 깔깔 웃었다. 나는 엄마에게 커피를 타다 주고 뿌옇게 먼지가 앉은 내 노트북 앞에 앉아서 엄마가 들어간 채팅방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입장과 동시에 나는 열댓 명의 'hi' 또는 '하2',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들을 받았다. 엄마는 열댓 명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채팅방에서의 엄마는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웃음들을 남발하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몇 놈의 ‘작업’을 받아넘기며 놀고 있었다. 평소에나 저렇게 웃을 것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면만 바라보다가 겨우 한마디를 썼다. '베를린, 가보고 싶네요.' 네 명 정도의 '뜬금없이 웬 베를린'투의 반응과 함께 그 휘몰아치는 대화의 홍수 속에서 내 말을 캐치한 엄마의 대답이 화면에 떠올랐다. '가고 싶으면 가면 되죠. ㅋㅋ'


초콜릿을 먹은 날부터 일주일동안 자궁의 염원을 이루지 못한 피들은 나를 원망하며 다리사이에서 흘러내렸고 나는 이루어주지 못한 대가로 일주일을 내내 자궁을 뜯어내는 것 같은 생리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심한 생리통은 처음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회사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생리통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엄마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냉동실에 있던 약을 먹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아픔을 잊기 위해서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기진맥진한 일주일을 보내고 피임약을 산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던 나는 하루를 건너뛰는 바람에 점심시간에 황급히 약을 사다 그 자리에서 두 알을 동시에 먹었다. 알약 위의 숫자들은 애 갖기 싫으면 꼬박 꼬박 먹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갖기 싫어서 피임약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피임약은 산부인과에서 생리 불순에 대한 처방으로 내려 준 것이고, 아마 엄마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를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이상한 주기의 생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산부인과가 싫었다. 우스꽝스러운 치마를 입고 진찰대에 누울 때마다 의사가 내 성기를 살펴보면서 내가 여태까지 몇 번이나 섹스를 했고 몇 놈이나 받아들였는지를 다 알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알아버린 사실을 엄마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이 자꾸 엄습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자물쇠까지 채운 비밀로 가득 찬 일기장을 서랍 깊숙이 숨겨두고 혹시 누가 손대거나 읽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의사가 그것을 알아버린다고 해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그런 시시콜콜한 것은 말하지 않겠지만.(설령 문제가 있어 엄마에게 말한다 해도 그런 것에 신경 쓸 엄마가 아니다.) 피임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들은 후부터 꼬박꼬박 하루 한 알의 피임약을 챙겨먹으면서 경과를 살피고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산부인과를 다시 가지 않았다. 매일 먹던 양의 두 배가 된 피임약은 약간의 어지럼증을 유발했고 여전히 회사의 공기는 헛구역질이 나게 만들었다. 나는 잠시 빠져 나와 휴게실에서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휴게실의 문을 연 대리는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과장에게로 가서 내일 하루 쉬게 해달라고 말했다. 너무 아파요. 병원엘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핑계를 대자 과장은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심드렁하게 그러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어지러움이 반은 날아간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몸은 전에 없이 가뿐했다. 내내 괴롭히던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날씨도 눈부시게 좋았다. 나는 아직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식빵을 구워 먹었다. 엄마, 여권 만들기 어려워? 엄마는 커피에 식빵을 찍다 말고 왜? 하고 물었다. 그냥, 나도 여권 하나 만들어 놓게. 어디 좀 가고 싶어서.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시청에서 발급할 거야. 인터넷 뒤져봐. 나는 빵을 입에 문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엄마의 메신저에는 많은 사람들이 접속 해 있었다. 여권용 사진, 주민등록등본, 병역관계 서류, 부모 동의서. 사진관에서 30분 완성 증명사진을 찍고 시청에 가서 등본을 떼고 신청을 하자. 혼자 중얼거리며 메모를 하는데 어느새 다가온 엄마가 뒤에서 물었다. 베를린, 같이 갈래? 나는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리며 집을 나섰다.


평일 낮인데도 시청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제각기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등본자판기는 한산하고 민원창구는 바글대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열심히 자판기와 씨름하던 아저씨도 결국 민원창구로 향했다. 네모난 기계를 몇 번만 터치하면 손쉽게 뗄 수 있는데도, 저들은 아직 직접 사람 손을 통해 받는 것이 익숙한가 보다. 기계는 친절한 사람에 비해 좀 삭막하기는 하다. 여권 발급 신청을 끝내고 약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나올 때까지 그 아저씨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갑갑해져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시청을 빠져나왔다. 맑았던 하늘은 조금 찌푸려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엄마는 여전히 채팅 중이었다. 아는 사람은 왜 그리 많고 할 이야기는 또 뭐가 그리 많은지, 나는 문득 과장의 전화와 문자로만 가득 메워진 핸드폰이 보기 싫어졌다. 정말 친한 친구 몇을 제외하고는 먼저 연락을 하기 전에는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 사실 친한 친구라고 해도 다들 제 살기 바빠 연락이 통 되지 않는다. 나는 적이 많고 친구들 수가 적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은 나를 거부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친한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도 늘 채팅으로 연락을 하고 살았고, 꽤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아빠도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정자를 전송하고, 엄마는 그것을 자궁으로 다운로드 받아서 나를 수정하고, 아빠는 그 이 후에 영영 접속을 하지 않아서 더 이상 연락도 할 수 없고 나는 아빠를 모르는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 정말 외로운 것은 엄마, 가여운 우리 엄마인 것이다. 물론 이건 그냥 내 망상일 뿐이지만, 어쩐지 채팅만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 묘하게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꾸준히 회사를 나갔고 꾸준히 물건들을 치워냈다. 엄마가 비우고 또 비워도 서랍을 자꾸 채우던 나름의 의미를 가진 잡동사니들은 하나 둘 버려지고 텅 비어가는 서랍들과 내 기억들로 가득 채워지는 쓰레기통을 보면 어쩐지 서글펐다. 한동안 나는 마치 죽음을 앞두고 주변정리를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엄마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방에서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올 때마다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방은 점점 정리되어갔지만 노란 곰 무늬 박스만은 무덤처럼 스산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비명소리만 들리면 해결사처럼 나타나 벌레를 해치워주던, 그래서 무조건 벌레만 보이면 고함을 꽥꽥 지르던 그 때처럼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비명을 지른대도 그 상대가 고작 박스라면 엄마는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가 갑작스레 회사 앞에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별 다를 것 없이 나름대로 평화로운 일상을 즐겼을 것이다. 과장의 은밀한 문자를 무시한 채로 회사를 나섰을 때 익숙한 풍경 사이로 그가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내가 그에게 다가 갈 때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이미 헤어진 사이고, 나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왜 그에게 다가 갔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아 이끌었고,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자주 가던 허름한 식당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첫 날에도 이렇게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함께 저녁을 먹었다. 별로 내키지 않았던 소개팅 자리에서 그는 혼자서는 왠지 쑥스러워서 식당엘 들어갈 수가 없다며 혼자서도 식당을 잘 간다는 나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었다. 원래 그렇게 혼자 다녀요? 네. 밥도 혼자 먹어요? 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네. "네."밖에 할 줄 몰라요? …아니요. 그는 풋 하고 웃으면서 참 재밌는 사람이네요, 라고 말하며 대뜸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 이후에도 종종 그는 단지 밥을 같이 먹자는 이유로 나를 불러냈고, 꽤 많은 횟수의 밥을 같이 먹은 후에 그는 내가 좋아졌다고 말했었다. 그는 다른 놈들처럼 사랑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잠자리를 강요하지 않았고, 억지로 삽입한 적도 없으며 생리기간엔 초콜릿을 사다 줄 정도로 친절했다. 나도 기억 못하는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길 정도로 섬세했으며 사귀는 동안에 양다리 한번 걸치지 않았다. 그는 종종 내게 너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가 '우리'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가 좋았고, 키스 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의 긴장한 듯한 몸짓이 좋았다. 그는 이별을 말할 때도 다른 놈들처럼 나를, 우리 엄마를 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했느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밥을 먹는 그는 나와는 남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왜 온 거야, 라는 내 질문에 그는 입에 밥이 가득 든 채로 대답했다. 배가 고팠는데, 혼자 식당에 오기가 싫었어. 나는 울컥 화가 났다. 고작 식당에 혼자 못 가서 날 찾아 온 거야, 지금? …너랑 같이 먹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사람은 싫었어. 그 날, 무작정 헤어지자고 말했던 거 …미안해. 나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말을 끝내놓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는 내가 과장과 잠자리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는 나의 엄마가 다방 레지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내가 몇 명의 망할 놈들과 뒹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도 그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한 숟갈을 마저 꼭꼭 씹어 먹고 나서, 그에게 말했다. 나, 베를린 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만큼 사람을 애달프게 만드는 일은 없다. 경우가 다르긴 해도, 아무 기약 없이 엄마에게서 정체를 알고 싶은 아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라서 잘 안다. 2년이라고 정해져 있는 군복무 기간도 못 기다려서 헤어지는 커플이 내 주위에도 널리고 널렸는데 기간도 없는 기다림을 하다니,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다. 사랑하면 미친다고들 하지만, 그 미친 연놈들의 대부분이 2년을 못 기다리고 고무신을, 군화를 거꾸로 신지 않았나. 용기를 내준 그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다. 길어봐야 한 달 정도 머무르겠지만, 그걸 모르는 그에게 이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그야말로 상처 주지 않는 좋은 핑계거리였다.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 이제 과거의 여자잖아.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여자 아니야. 그냥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머리인지 마음인지 나오는 대로 횡설수설 지껄이면서 나는 생각했다. 베를린에 가자.


그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잠들어 있었고 컴퓨터는 꺼져 있었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잠든 것이 분명한 엄마는 덩그러니 혼자였다. 사막에 혼자 서있는 선인장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껐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은 고요해졌다. 나는 평생 결혼 따위는 하지 않고 엄마 옆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빠가 없어서도, 엄마가 채팅 중독이라 서도, 내 인간관계, 사회생활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서 깔깔대는 엄마가 한 밤중에 혼자 술을 먹던 모습을 본, 엄마도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날부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움직일 수 없는 엄마는 사막 한가운데 혼자 있는데, 나마저 엄마를 버리고 오아시스로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엄마가 외롭지 않게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엄마가 베를린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집에서 나는 마음껏 자유를 누려 볼 생각이었다. 엄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집에 나 혼자라서 할 수 있는 행동들, 발가벗고 하루 종일 지내본다던가, 전화기 코드와 배터리를 모조리 뽑아 놓은 채 출근 걱정 없이 온 집을 뒹굴며 실컷 잠을 잔다던가, 내킬 때마다 춤을 춘다던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볼일을 본다던가 하는 일들을 하려고 했었다. 외로운 엄마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자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막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나였던 것 같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워하는 생활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문득 엄마가 온갖 걱정을 떠안고 살던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니 앞가림이나 잘해, 이것아.


깨끗해진 방 한 구석에는 늘 노란 박스가 앉아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며칠 째 고민하다가 나는 노란 무덤을 이제 치워버리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방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란 박스를 꺼냈다. 손이 조금 떨려왔지만 뚜껑을 열고 정말 어지럽게 온갖 물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진정되었다. 어느 외화시리즈에 나오는 과학수사대처럼 하나하나 꺼내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애틋함이 묻어있는 편지들은 모두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었고, 향수나 책처럼 쓰레기통에 넣기 힘든 물건은 버리는 박스에 죄다 담았다. 목걸이에는 크리스마스 깜짝 이벤트의 추억이 묻어있고, 밑바닥 마개가 없어진 도자기 저금통은 누군가와의 100일까지 매일매일 동전을 저금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물건에는 과거가, 추억이 서려있었다.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나는 이 박스에 얽매여 살아 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자 어서 이 물건들을 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하나하나의 추억을 곱씹으며 잡다한 물건들을 꺼냈고, 결국 바닥을 드러낸 박스의 한 귀퉁이에는 사탕이 녹아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왠지 내 마음 한 귀퉁이가 녹아 있는 것 같아 모질게 박스를 밟아 찌그러뜨리고 남은 정리를 끝내는데 엄마가 머리를 긁으며 커피 한 잔을 갖다 주었다. 자다가 나 때문에 깬 엄마가 짜증을 부리지 않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차마 내가 버리지 못한, 그에게서 받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후련하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망할 년, 이 난리를 쳐가며 치웠으면 후련하기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나는 그냥 흐흐, 하고 웃었다. 엄마는 실없는 년, 하고 내 머리를 가볍게 쳤다. 나는 불쑥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아빠한테 선물 받은 거 없어? 내가 그 놈 생각하면 속 시끄러 이것아. 다 치웠으면 잠이나 자. 다 마신 커피 잔을 휙 빼앗아 들고 엄마는 내 방을 나가버렸다. 엄마에게서 처음 듣는 아빠의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아빠는 '망할 놈'이라는 내 추측이 맞는가 보다.


그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고, 그 날 이후로 나는 과장과의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과장은 잦은 잔심부름과 커피심부름으로 은근히 자신의 불만을 내비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과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과장과 모텔에 가는 대신, 회사를 마치면 일찍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여전히 채팅을 하고 있었다. 딸, 커피 좀 타줘. 하루에 많게는 열 잔 가량의 커피를 마셔가며 엄마는 누구와 저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커피를 타다 엄마의 책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채팅이 그렇게 좋아?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좋은데? 엄마랑 이야기 하는 그 사람들,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잖아. 엄마는 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고 나서 빙글 돌아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좋아.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서 편해. 싸울 일도 없고, 맞을 일도 없고, 코앞에 그 사람이 앉아있는 게 아니라서 위험할 일도 없으니까, 그래서 좋은 거야. 이 놈 아니다 싶으면 친구목록에서 삭제해버리면 그만이고. 연락이 끊겼다고 해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마주쳤다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엄마의 속 편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엄마 옆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현실도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인터넷이 좋겠네, 나 같은 사람한테는. 엄마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에 가려고 결심한 이후로, 사직서를 쓰려고 매일 '새 문서'를 켜두기는 했지만 흰 백지위에 깜박이는 커서만 멍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이미 작성된 사직서를 다운받을 수가 있으니까. 그 위에 이름과 직위만 내 것으로 고친 후 프린트하고, 내 이름 옆에 사인을 하고, 봉투에 담은 뒤에 위에 큼지막한 글씨로 '사직서'를 쓰고 나서 들뜬 기분에 나는 러닝과 사각팬티만 입은 차림 그대로 온 집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엄마는 정신이 사납다고 짜증을 냈고 거실을 빙글빙글 돌 때는 드라마가 안 보인다고 짜증을 냈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짜증을 피해 방으로 도망을 치면서도 춤을 추었다. 엄마는 드디어 저것이 미쳤다며 혀를 찼다. 기분은 여전히 좋았다.


점심시간에 전화가 왔다. 드디어 여권이 발급 되었다고, 찾아 가라는 상냥한 시청 직원의 목소리였다. 다들 부산스럽게 퇴근을 준비하는 동안에 나는 과장에게 사표를 내밀었다. 과장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혹시 우리의 관계가 들킨 거냐고 물었다. 아뇨. 그럼 왜 그만두는 거야?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어? 베를린에 갈 거라 서요. 과장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몇 안 되는 직원들이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회사를 빠져나갔다. 사무실은 금방 과장과 나, 둘만 남았고 꾸벅, 고개를 숙인 내 목덜미에 과장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내 전화는 왜 피한거야? 뭐가 모자라서 이러는 거야? 엉? 말하는 폼을 보아하니 이놈도 깔끔하게 끝낼 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과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지겨우니까요. 애기 지우는 일도 신물이 나요. 내가 피임약을 먹는 줄 모르는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콘돔…. 콘돔도 피임률 100퍼센트는 아니거든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그리고 나는 마음에도 없던, 전혀 감사하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서 어어, 하는 과장을 뒤로 한 채 이미 정리해 두었던 별 것도 없는 짐을 들고 회사를 빠져 나왔다.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여직원들은 후련할 것이고 남직원들은 엉덩이가 가벼워 보이는 다른 여직원을 이야깃거리 삼을 것이고 과장은 또 다른 세컨드를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이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회사 앞에 파는 토스트를 사먹고 서점에 들러 독일 여행서적을 뒤적거렸다. 손을 땄을 때 뚝뚝 흘러내리던 검은 피를 본 듯 시원한 기분이었다.


베를린 행 비행기는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엄마는 자리를 잡고 앉아 부산을 떨며 새로 산 포켓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고, 나는 독일 여행 서적을 읽었다. 베를린은 반으로 쪼개졌던 도시다. 결국 장벽을 허물고 다시 하나로 합쳐진 감격스러운 도시이기도 하다. 굳이 어렵게 비자를 받지 않아도, 한 달 정도는 누구든 너그럽게 받아주는 사랑스러운 도시다. 사랑이 없어 반쪽뿐이라던 이모는 하나가 된 도시에서 사랑을 만나 완벽한 하나가 되었을까? 아마 이모는 또 나를 붙잡고 들뜬 얼굴로 언젠가 망할 놈이 될지도 모를 멋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겠지. 이번엔 이모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이모가 사랑하는 방법을 좀 들어야겠다. 그러면 나도 이모처럼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몇 번의 지루한 안내방송 끝에 기분 좋은 흔들림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책으로만 보아오던 사랑스러운 도시는 안녕, 하고 웃으며 나를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어쩌면 도시와 함께 아빠도 마중 나와 마침내 엄마와 하나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순식간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도시를 보며 웃었다. 미련하게도 나를 기다리겠다던, 저 도시 어딘가의 작은 점이 되어버린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나도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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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소설 학평회 과제로 썼던 소설.

좋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칭찬도 들었고

내가 쓴 녀석이니까 애정을 가지고 (-_-) 용기내서; 올려본다.


수업시간 평가를 참고삼아 약간 수정한 수정판.

원래 제목은 안녕, 베를린 이었는데 

안녕,이 Bye의 의미로 보인다는 의견이 많아서

Hallo로 고쳤다. (Hello의미의 독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은;

교수님이 지적하신 '베를린의 정치적 상징성' 이었는데..

그건 뭐--;; 이제와서 도시를 베네치아(-_-)같은데로 바꿀수도 없어서

그냥 두었다;; (난 베를린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


어쨌든, 재밌게 읽으셨다면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