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고래>를 읽느라 잠을 설쳤다. 칼잡이와의 이야기에서 멈춰버린 후로 이런저런 핑계때문에 다 읽지 못했던 것을, 어젯밤에 잠이 안와 다 읽어버리고 자야겠다, 하고 시작해서 새벽 6시에 책을 덮었다. 뭘까? 공포소설이 아닌데도 오싹한 그 기분은.


내가 잠이들고 1시간 40분이 지났을 즈음 개학한 내 동생은 학교로 출발하고, 출근 준비 하시던 엄마가 갑자기 날 두들겨 깨워 택배 올거 있었냐? 하고 물었다. 예전 포스팅에 썼던, 이런저런 이유로 못갔던 졸업식의 증거품들을 지난 금요일 절친 정쑤가 택배로 부쳐준 것이 도착한 것일테지. 잠결에 응, 응 하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몇시간쯤 지나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 부스스 일어나 앉았는데, 방문앞에 떡하니 대형박스가 하나. 졸업장과 졸업앨범이겠거니 하고 박스를 뜯고 포장을 풀러보니 글쎄, 중고딩 졸업앨범은 저리가라 할정도의 대형 졸업앨범. 별 기대도 안하고 앨범을 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졸업사진의 저주는 꿋꿋이 명맥을 이어내려오고 있었다. 제발, 졸업앨범 받은 모든 학생들에게 부탁컨데 앞장부터 차근차근 정독하지말고 잽싸게 니네과 펴서 니얼굴만 확인하고 닫어라. 우리과 우리학부야 나랑 마주치며 살았으니 그러려니 할테지만, 4년 학교다니며 나와 마주치지 않은 그 누군가들이 내 사진 본다고 생각하니 아 나는 다이어트도 안하고 뭐했나...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이어트가 문젠가 이게.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며 머리 다 뒤로제껴 더 똥그란 얼굴이며... 사촌언니 졸업사진은 무지무지 이쁘던데, 그래서 나도 졸업사진 이쁘게 나올줄 알았지 누가 이런줄 알았나. 


초등학교땐 다들 촌스럽고 새카맣고 그래서 졸업 사진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뒷페이지에 학교 행사 사진에 내가 두군데나 찍혀있는게 아닌가. 도대체 표정들은 한결같이 왜 그런건지. 어린마음에 상처받고 위에 스티커를 붙여놨더랬다-_-. 중학교는 또 어떻고. 내가 그때 머리를 도대체 왜 그런건지...후회막급이다. 물칠이나 하지말걸. 젠장. 고등학교는 고3의 압박과 담탱이의 압박으로 살이 초절정을 치닫으며 쪘을때라서, 사진을 보니까 울고싶었다. 그래도 "대학 가면 살 빠지"고 그 "살은 키로 갈"테니 대학사진만큼은 이쁘게 나오리라 다짐했건만. (도대체 왜 우리집안 식구들은 저런말로 나를 안심시켰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살은 키로 간다"는 속설의 사실여부를 묻기위해 의사선생님을 인터뷰했을때, 선생님의 웃음과 함께 한마디. "살은, 살로갑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진리인것을. 나는 너무 순진했던걸까?) 


액자는 파손될까봐 택배는 안받는다고, 그래서 못부친다고 했다. 아마 한동안 내려갈일 없을테고 추석때나 되야 집에갈텐데, 그때 건네받으면 그냥 우리집 한쪽 구석에 얌전히 덮어놔야겠다. 어째 학교 24년 다니면서 졸업앨범한번 이쁘게 나오질 않는단말인가. 정녕 졸업앨범의 저주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내가 어느날 갑자기 미쳐 다시 대학을 들어가지 않는 한 졸업할일은 없을테니, 앞으로 찍을 증명사진들은 제발 잘 나와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