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모난 화면과 싸우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면 속에서 올라오는 파란 글씨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마 그도, 이 건너편에서 분홍색 글씨들에게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작 얼굴을 마주하고는 잘 싸우지 않았다. 싸움이 생길법 하다가도 잠잠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컴퓨터란 놈 앞에서 마주앉기만 하면 우리는 쉬지않고 싸워댔다. 나중에는 컴퓨터가 일부러 싸움을 붙이나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는 늘 메신저에서 약간 화가 난 듯 보이는 말줄임표를 쓰거나 느낌표로 표현한 보이는 고함을 지르면서 싸웠다. 나는 그가 툭하면 붙이는 말 끝의 점 두개를 가장 싫어했다. 일반적으로 말 줄임표는 글씨의 가운데쯤에 점 세개가 나란히 찍히기 마련이다. 싸우는 와중에 특수문자 일일이 찾아가며 쓰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쩐지 점 두개는 찍다가 만듯한 인상을 주었기때문에,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의 점 두개는 볼수록 화가 났다. 물론 평상시에 어쩌다 사용하는 점 두개는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싸움이 시작될 듯한 기미가 보이면 나도 어쩐지 점 두개에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어떻게 같은 점 두개에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런 내 자신이 웃기고 또 신기한 것이었다. 


메신저에서의 싸움은- 메신저로 화를 내고 메신저로 악을 쓰고 메신저로 끝을 보고 오프라인이 되면 그만이기 때문에, 고함을 지른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동동거린다거나 하는 모습을 상대방이 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라면 메리트였다. 길거리에서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구경하는 이도 없거니와, 둘뿐인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가 터져나오든 아무 거리낄것이 없다는 것 또한 장점이었다.  물론 싸움이 격해지고 감정이 치솟으면 키보드를 두다닥 두드리는 손목은 엄청나게 아파왔지만, 눈에 불을 켜고 싸우는 와중에는 손이 아픈지 만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지 않은가. 또 메신저로 어찌됐든 결론을 보고 만나면, 또 만나는 순간 애틋해지는 감정에 피식 웃고 말아서 어찌되었건 화해에 이른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화면 밖으로 벌어지는 실제 상황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알수가 없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어찌되었건 그는 메신저에서 나에게 고함을 지르는지, 목소리를 깔았는지, 극도로 화가 났는지를 알수 없는, 화가 났다는 것만 단순하게 알 수 있는 글자들을 뱉어 내고 있어서, 나 역시 그에게 화가 났다는 인상을 심어주도록 강한 단어들을 뱉어냈다. 그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메신저의 별명을 바꿔버린 뒤에, 오프라인으로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나에게 알렸다. 나는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먹다 만 아이스티를 마시며 혹 그가 다시 메신저에 들어왔을 때 나 역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오프라인으로 만들어 버린 뒤에, 핸드폰 밧데리를 뽑아 던져버렸다.

그 순간, 나는 정말 혼자가 되어버렸다. 


달려가서 품에 안겨 미안하다는 말을 속삭일 수 없는 거리, 발신번호가 드러나서 어딘지 쉽사리 예측이 가능한 공중전화, 이미 문을 닫고 조용해진 밤거리, 술 한잔 걸치며 그깟 놈 헤어져버리라고 내 편을 들어줄 친구가 하나도 없는 도시. 그렇게 혼자를 만끽하며 캔 맥주 하나를 사들고 돌아왔을 때 캄캄한 방에 켜진 이 네모난 녀석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모든 메신저가 꺼지고 단지 인터넷 하나만으로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이 네모난 기계가 왜 그렇게 미운건지, 아니면 이 네모난 기계가 아니었더라면 싸우지 않았을 우리의 대화내용이 미운건지, 하여튼 갑작스레 눈물을 쏟으며 단숨에 맥주 캔을 반 비우고 메신저 로그인을 했다. 연결이 되자마자 켜진 대화창에는 한층 누그러지고 괜히 화냈다는 후회감을 담은 그의 말이 떠올랐다. 실없이 화낸것에 대한 미안함, 참지못하고 화를 터뜨린것에 대한 미안함, 먼저 사과하지 못한것에 대한 미안함, 말없이 오프라인 한것에 대한 미안함, 화를 터뜨리던 대화창엔 미안하단 말만 한가득 쌓였다. 이 망할 네모난 녀석이, 울고있는 내가 안쓰러웠나보지. 싸움을 붙여놓고 신나게 구경하다가 이제사 나한테 미안해진거야. 어쩌면 이 사과하는 대화창은 그사람이 아니라 그사람의 네모난 컴퓨터일지도 몰라. 이놈이 내가 맥주 사러 간 사이에, 그쪽에 있는 놈과 대화를 나눴겠지. 울더라고, 그만 화해 시키자고. 응. 이쪽도 미안해 하고 있던데, 라면서.

평생 해야될 미안하단 말을 오늘 몰아서 다 한것처럼 미안하단 말을 쏟아내놓고,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두 컴퓨터의 농간이든 아니든, 약속날 만나러 나가면 우리는 또 머쓱함과 안도감과 미안함으로 마주보고 웃게 되겠지. 

그거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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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써놓고도 뭘 쓴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_-; 살짝쿵 잠에 취해서, 찝찝한 기분에 취해서(?) 쓴 글이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걸 주저리주저리 써 봤다. 습작이니까, 못써도 괜찮아-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