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뜬금없는 수업이지만 어쨌든 이번학기는 게임일본어를 듣고 있다.


사실 2년제 전문대라서 걍 들으라는 대로 듣는 과목이긴 하다만...


수업의 방식은 한권의 일본어로 된 교재를 1인당 적정분량을 나눈뒤에


매주 두명씩 자신의 분량을 번역해옴과 동시에 일본어를 읽어야되는 것,


이것이 곧 시험점수로 직결된다. 즉 중간과 기말이 없는 방식의 점수.


번역기를 돌리거나 친구의 받아도 별말씀 안하시는건 조금 좋은 부분


어쨌든 나의 발표는 6주차, 제비뽑기를 잘못해서 할당량은 좀 많고,


느긋하게 1주일에 한페이지씩 했으면 모르겠는데 노닥노닥거리다가


이틀전에야 정신을 차리고 했더니. 하루밤을 새어도 모자라네 그려..


앞이 캄캄했던걸 네이버 번역기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프린트까지 


완료 하고나니 후련하기 그지없다.  앞이 캄캄해도 안되는거란건 없구나.




나의 눈(眼)


-wrting by Liti


세상이 밝아졌다. 어느새 아침이었나 보다. 무겁기만 하던 눈꺼풀이 들어올려지자 나는 비로소 밝은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조리개가 잠시 움츠리기는 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달려있는 눈이다. 이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나는 이 아이의 몸에 살며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세상의 아름다운 면들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나는 흔들리고 있는 거리를 보고 있다. 스쳐지나간 이상한 물체. 나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보다는 이 아이의 호기심이 훨씬 우세하다. 빠른 속도로 거리가 한바퀴 휙 돌고 나에게 비친 것은 처참하게 터져버린 고양이의 시체였다. 그 물체의 잔상은 또 내 안에 기록되었다.


내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언제인지, 어떤 이유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뇌에서 타고 내려온 생각이 나에게서 걸려 올라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생각이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단지 물체의 잔상들을 비추고, 신경계를 통해 뇌로 타고 올라가게 해주는 일밖에는. 한때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내 마음대로 움직여보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뒤에서 붙잡고 있는 시신경… 그것이 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족쇄라는 것을. 내 안에서 맴도는 생각은 그저 나의 직감을 무시하고 내가 보기 싫은 '어떤 것'들을 보아버리는 내 주인인 이 아이를 불평해대는 일밖엔 할 줄 모른다.


내가 이 곳에 매달려 있은 지도 꽤 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의 높이도 제법 높아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는 무시무시하게 빠른 다리들만 보았는데, 어느 덧 나는 웬만한 사람들의 머리 위를 훑어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나와 동공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검은 동공들은 탐욕으로 가득 차 번쩍거리고 있다. 때론 벌건 핏줄이 돋은 눈알이 나를 보고 있다. 뭔가 흡족한 얼굴이다. 저 벌건 눈알은 내가 칼부림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 쪽으로 날아오는 주먹들과 몸 여기저기에서 쏟아내는 피들을 보고 지쳐 돌아왔을 때 항상 저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기분이 나쁘다. 아니, 이 나쁜 기분은 내 생각이 아니라 여전히 불쾌하게 내 뒤를 당기는 시신경 뒤로 이어져있는 이 녀석―더 이상 이 녀석은 아이의 몸이 아닌 듯 하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다.


가끔 원치 않는 파란 하늘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몸은 마치 쪼그라들 듯 시려온다. 시신경은 내 몸을 붙들고, 이 녀석은 눈꺼풀을 몇 번이나 깜박이면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홍채가 늘었다 줄었다하며 빛 조절을 하면 그제야 나는 포기를 하고, 시리도록 눈부신 파란색에 몸을 맡긴다. 이 녀석의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색깔' 이다. 나는 그 건물에 넘치도록 가득 차있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으니까. 볼 수 있는 색이라고는 오로지 '검은색' 뿐이어서, 나는 그게 너무나도 지겨웠다.


벌건 눈알과, 번득이는 눈알들과, 검은 동공이 사라진 채로 허옇게 뒤집어진 눈알과, 험상궂은 눈매 아래 숨겨진 눈알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갈 무렵에,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눈을 마주 대해야 했다. 눈부신 하늘의 푸른빛을 닮은 동공을 가진 눈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눈이었기에, 나는 어찌 마주 대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 녀석도 어쩔 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서는 서로의 빛을 마주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아이의 눈은 웃었고, 나도 멋쩍은 웃음을 보내주었다. 녀석은 아이와 손을 잡았고, 심장 박동 소리가 나에게까지 전달되어왔다. 아이의 손을 몇 번이고 쓰다듬고, 볼에 비벼대고, 결국은 아이가 손이 저려 급하게 주물러 주게 될 때까지도 녀석은 손을 놓지 않았다. 팔이 뻣뻣하게 저려오는 아픔에 아이의 파란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래도 그 눈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나도 행복했다. 서로의 빛을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동안만은.


하늘은 어두워졌고,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며 나에게로 튀었다. 녀석은 손으로 나를 몇 번 슥슥 문지르고는 길을 걸었다. 녀석은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길을 걸었다. 눈썹에 맺혀 정신 없이 떨어지는 빗물 때문에 나는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며칠 전, 파란 눈의 아이는 사라졌다. 녀석은 앓아 누웠었다. 덕분에 나는 며칠동안 천장만 줄곧 보아야했다. 낡고 색이 바래버린 꽃무늬 벽지가 아팠다. 눈물샘에서 솟구쳐 오르는 눈물이 따갑던 나를 씻고 지나갔다. 그리고 곧 벽지는 흐릿해지다 어둠에 덮여버렸다. 그렇게 녀석은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어깨의 떨림이 너무 심해 어지러웠다. 녀석이 자리를 걷고 일어났을 때까지 파란 눈의 아이의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아이의 파란 눈만큼 시리도록 아름다운 색은 아니었다. 녀석은 잠시 구름이 덮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커튼을 확 쳐버리고는 침대 쪽으로 몸을 돌려 세웠다.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저 보고 판단해야하기에 녀석의 낌새를 살폈지만, 녀석은 아주 세게 벽을 쳐버렸을 뿐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녀석은 버림받은 것이었을까? 불규칙하게 전달되는 심장박동이 불안했다. 너무 심하게 뛰어 혹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멈춰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다른 모든 잔상을 볼 수 있을 뿐, 거울이 없는 한 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고로, 나를 달고있는 이 녀석의 모습 또한 볼 수 없기에, 나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심장박동은 점점 크게 전달되어왔다. 그리고 녀석은 전화기를 보았고, 나는 빗물에 흐려지고 있었다.


빗속을 지나 다가간 것은 파란 눈의 아이였다. 그 아이의 표정은 온통 경멸로 가득 차서는 더 이상 보기 싫으니 꺼져,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아이의 파란 눈은 나를 보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이의 눈이 말하는 진실을 듣고 있지 못했다. 멍청한 놈. 그 미안함을 전해주지 못하는 나도 답답했고, 눈과 표정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아이도 답답했다. 녀석의 몸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아이의 뺨을 갈겼다. 그리고 돌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벌건, 아니 이젠 아주 붉게 변해버린 눈알이 내 앞에 떠 있었다. 그 눈알의 이죽거리는 웃음은 여전했다. 녀석은 부르르 떨었다. 붉은 눈알을 달고 있던 녀석의 입에 물려있던 시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의 맨 손이 붉은 눈알을 향해 세차게 내리쳐졌지만, 미처 닿기도 전에 끔찍한 충격을 녀석의 몸 쪽에서부터 전달받아야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런 느낌이 없다. 뒤쪽에서 전달되던 끔찍한 고통도 사라졌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와중에 거울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녀석의 모습을 보았다. 거울이 아니었다. 나는 그 녀석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온 몸을 우그러뜨린 채 한쪽 얼굴을 감싸 쥐고 그때 보았던 그 고양이 마냥 널브러져 있었다. 동공이 없는 하얀 눈알을 가진 녀석이 마지막으로 녀석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새까맣던 그것들은 손에 쥔 각목 따위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손을 탁탁 털고 침을 퉤, 뱉고 사라질 때까지도 녀석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세상은 흐릿해져갔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파란 눈의 아이가 흐릿해지던 빗속의 풍경처럼.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내 멋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그렇게 흐릿해져 가는 세상을 있는 힘껏 치켜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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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수업 레포트였던 '나의 눈'으로 재미있게 글쓰기.

(돈돈돈이라는 다른 소재도 있었다만;; 난 이게 더 좋아서.)

음.. 재미는 모르겠지만, 난 쓰고 상당히 만족했던 글이다.;;